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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작가의 망우리 이야기 - 17 상봉동 대학생의 일기(1983.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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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9.14  11: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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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계기로 망우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라는 것이 망우리공원 강의 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대학 2학년 말, 중화초 앞에 살 때 처음 망우리공원에 간 날의 일기를 올린다.

* * * * *

어제는 망우리공동묘지를 가다. 나의 의식에는 ‘시인 박인환의 死’와 함께 가끔 공동묘지가 떠올랐는데 어제야 비로소 발길을 내디딜 수 있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배회하는 것처럼 청승맞은 것이 어디 있겠냐만 나에겐 이런 것이 이미 진력날 정도로 경험이 많다. 아무리 고독하더라도 최소한 그의 고독을 메워 줄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다면 그의 고독은 쓰리지 않다. ‘그 무엇’은 내면의 충일감, 자신감 같은 것이리라.

걸어서 얼마 안 걸리는 곳이기에 또 차비도 없어 걷기로 했다. 길가에는 석재공장이 드문드문 있어서 묘지 냄새를 거기부터 맡게 된다. 많은 비석용 돌, 검은 돌(비싼 돌). 석상들이 서 있는 것이 사람들 같은 인상을 준다. 팔려나가길 기다리는 석인들. 그들은 정승들. 누구의 무덤을 지키는 석상이 되려는가. 어느 관리의 어느 부자의 잠든 곳을 지켜 주려는가. 석공들은 옛날과는 달리 망치와 정뿐만이 아니라 여러 기구를 갖고 돌을 깎는다. 그렇게 다보탑도 멋들어지게 깎아 세우고 성모마리아, 불상, 소, 말 등도 만드는 것이다. 어느 석재공장 구석에는 등불을 밝히는 석등이 열을 지어 세워져 있다.

이십여 분을 걸어 산기슭에 다다랐다. 왼쪽으로 시멘트로 포장된 좁은 길이 보인다. 자그마한 초라하게 보이는 무덤들이 좌우로 있다. 비석을 봐도 자그마한 돌비석이다. 어느 무덤에 ‘학생’이라고 쓰여 있기에 난 어떤 학생이 요절하였는가 생각했으나 알고 보니 벼슬하지 않은 사람을 가리키는 유교식 비문이라고 한다. 기독교 신자의 비석엔 십자가가 그려져 있다. 아무개 장로라고 쓰인 비석도 있고 기독교인의 무덤이 묘가 꽤 많이 보여 난 잠시 그들이 결국 구원을 받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비석이 없는 혹은 없어졌는지도 모르는 무덤도 있다.

비석의 경우, 크기와 돌의 종류로 죽어서까지 지위의 차이가 있음을 보게 되는데 한용운, 오세창, 조봉암 등의 비석은 웅장하다. 내가 발견한 이로는 3.1운동 33인의 한 분인 이갑성의 부인 차숙경. 이런 이의 비석 위엔 그의 약력이 적혀 있으나 이름 없는 어느 부자의 비석엔 그저 자식들 이름만 적혀 있다.

또, 어느 비석에는 자식들이 어머니를 기려서 글을 적어 놓았는데, “인생을 홀로 가정을 이끄시어 자식을 훌륭히 키우셨다. 어머니를 생각하여 이 비를 세운다”라고 하여 자식들의 효심을 느끼게 한다. 반대로 20세에 요절한 아들을 기려 비석을 세웠는데 “바람이 부나 비가 내려도 너는 영원히 우리 가슴에 있다”라는 부모의 글이 애처롭게 다가왔다. 작곡가 채동선의 묘[2012년 이장]에는 가곡 「그리워」의 가사가 적혀 있다. 음악평론가 한상우의 글. 야구인 이영민의 비석, 대한야구협회가 세움. 그리고 어느 서민의 단 하나의 비목 “아버님 잠드신 곳”이라고 검은 페인트로 쓰고 다 지워져 연도를 알 수 없다.

정상 가까이 다다랐을 때,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서울의 시가지는 시끄럽게 어떤 질서에 의해 계속 숨 쉬고 있다. 차들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가고 있는데 어디론가 가지 않고 서버리는 것이 죽음을 말한다는 듯, 끊임없이 어디론가 간다. 지금도 저 건물들 안에서 공원에서 거리에서는 애욕과 투쟁과 갈등이 존재하고 그렇게 모두가 숨 쉬며 이곳 공동묘지(죽음)를 잊고 살아간다. 정말 저곳은 이곳과 전혀 관계를 맺지 않고 있는 듯 스스로 살아간다. 이곳은 한적하다. 조용하다. 무덤은 단지 일 년 중의 어떤 날을 기다리며 또 기다리며 잠들어 있는 이의 지붕인가…….

* * * * *

일기의 맨 위에, 놀랍게도 ‘망우리에 대한 소묘. 르포, 하자’라고 적혀 있다. 상봉동 살던 대학생은 26년 후인 2009년 4월, 『그와 나 사이를 걷다』 초판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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