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랑신문  
기획 특집
김영식 작가의 망우리 이야기 20 누가 고인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중랑신문  |  webmaster@www.jungnangnews.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1.11.02  16:00:54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 msn
   
 

“당신이 뭔데, 감히 큰아버님을 모욕하는 거요? 조용히 잠드신 묘지에 무슨 안내판이고 뭐고 하며 들쑤시는 거요?”

내 안에 갇혀서 유족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적이 있었다. 2016년 인문학길 사잇길 공사 때 묘역에 안내판을 세웠다. 문안을 작성하면서 유족이나 추모사업회의 확인을 받았다. 대부분 이견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졌는데, 극작가 함세덕의 경우, 별생각 없이 쓴 문안이 유족의 아픈 상처를 건드렸다. 초안은 아래와 같다.

“…전략… 하지만 해방 후에는 서정극을 떠나 사회주의 이념의 세계로 들어섰다. 남로당에 가입해 연극활동을 하다 정치 연극이 금지되자 월북하여 활동하고 6·25 때 인민군 선무반으로 서울에 내려왔다가 수류탄 사고로 사망했다. …비문의 글처럼, 그는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손을 내밀고 있고 우리는 그의 손을 잡으며 그의 문학과 삶을 생각한다. 삶이란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고 누군가의 내민 손을 붙잡는 순간의 연속이 아니겠는가.”

함세덕은 자의로 월북하였고 6.25 전쟁 때는 인민군 선무반의 일원으로 내려왔다. 그래서 우리는 오랫동안 교과서에서 그의 이름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비석은 월북작가 해금 후에 동생이 세웠는데, 비석 후면 글 중 “1950년 6월 29일 서울에서 □사했다”라고 글자 하나가 지워졌다. 지워진 글자는 ‘전’이다. 누가 훼손한 흔적이다.

묘지 관리인인 조카분은 대학 때 큰아버지 함세덕의 『동승』을 대출받았다고 경찰의 조사를 받았고 군대에서도 중요 보직에서 제외되는 등 평생 연좌제로 고통을 받았다. “조용히 잠드신 분의 아픔을 들쑤시는 게 인문학길이란 말이오?”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필자의 설명은 그분 평생의 아픔을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날 저녁 다시 전화가 왔다. “내 다시 한번 자세히 읽어봤소. 인민군 운운하여 기분 상해 심한 말을 했지만, 마지막 글에 내 울컥했소. 앞부분만 약간 고쳐서 세우도록 하시오.”

공원의 많은 안내판을 읽어본 분들은 아실 것인데,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면 곧 알 수 있는 이력은 최소한으로 하고, 묘역의 설명이나 고인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화두를 중시하였다. 최종판은 다음과 같다.

“인천 출생. 1936년 21세의 나이로 단막극 「산허구리」를 《조선문학》에 발표하며 등단, 1939년 3월 동아일보 주최 제2회 연극경연대회에 올린 「도념」(동승의 원제)의 작가로 크게 주목받았고, 이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해연」(1940)이 당선되며 극작가로 자리 잡았다. 초기에는 주로 어촌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많이 썼는데 대표작으로 꼽히는 「동승」이 지속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으며 우리나라 초기 최고의 극작가로서 우뚝 섰다. 「동승」을 원작으로 한 영화 『마음의 고향』은 1949년도 최고의 흥행작이었고, 1988년 월북작가 해금 이후, 「동승」은 다시 우리 연극계의 고정 레퍼토리로 사랑받고 있다. 비문의 글처럼…(후략, 상동).”

우리나라의 아픈 근대사를 되돌아보는 지금 우리의 관점은 친일 행적을 남긴 이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까지 미워할 수는 없으며, 아무리 친일파가 미워도 죽은 자를 모욕하는 것은 산 자의 예의가 아니다. 그들처럼 나 자신도 완벽할 수 없다는 인간의 한계를 이해할 때, ‘진정한’ 화합, 통합의 가능성이 열린다.

망우리공원에는 영예뿐 아니라 치욕도 공존한다. 독립지사는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속세를 함께 살다가 이곳에 함께 잠들어 있다. 생전에 무슨 일을 했건 모든 고인을 고이 품고 있는 곳이 망우리공원이다.

< 저작권자 © 중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중랑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중랑신문 서울 중랑구 송림길 4. 3층  |  대표전화 : 02-433-7771  |  팩스 : 02-438-3037
등록번호 : 서울,다50705  |  발행인 : 김민아  |   편집인 : 구주회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아
Copyright ⓒ 2011 중랑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nnews0318@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