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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작가의 망우리 이야기19 망우리에서 만난 사람, 서립규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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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11.03  17:2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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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우리에 오랫동안 천착하다 보니 필자처럼 망우리를 좋아하는, 즉 마음의 결(紋)이 비슷한 친구가 많이 생겼다. 답사 안내시에, 망우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교양으로는 국민의 1%에 속한다는 근거 없는 자부심의 말도 감히 언급할 정도로, 훌륭한 분도 많이 만났다.

2008년 <신동아>에 「망우리 별곡」을 연재할 때 전화를 해 준 서립규(徐立圭 1938~2015) 선생도 그중 한 분이었다.

아차산 워커힐 아파트에 거주하며 휴일에 망우리까지 자주 산책하며 필자와 같은 생각을 했는데, 필자의 글을 발견하고 기뻤다며 크게 격려해 주었다. 책도 수십 권을 사서 지인들에게 나눠 주었다.

망우리공원에서 처음 만난 날, 아드님이 운전하는 검정 벤츠를 타고 왔다. 알고 보니 우림콘트리트공업(주)의 회장이었다. 우람한 체격에 각진 얼굴은 옛날의 장수를 연상케 하는데, 지인들은 그를 문무를 갖춘 다정다감, 다재다능한 인물로 증언하고 있다.

1950년에 6월 5일 경기중학에 입학했으나 곧바로 6·25전쟁이 터져 피난 학교에서 공부하며 1956년에 52회로 졸업했다. 동기생들은 고생이 약이 되어서인지 크게 성공한 인물이 많다. 재계에 김우중(대우), 조양래(효성), 박용오(두산), 이준용(대림)이, 정관계에 고건, 이종찬이, 문화계에 김동호(부산영화제), 신구(배우) 등이 있다. 훗날, 마당발 서립규 선생은 선후배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경기고 동창회 결성에 큰 역할을 했고 1998년 경기고 100주년 기념사업추진회 위원장도 맡았다.

1957년 서울공대 토목과에 들어갔다. 경기고 시절부터 핸드볼팀 주장을 지낸 그는 공대에 입학하자마자 핸드볼팀을 창설하여 4년간 주장을 맡아 59년 전국체전에서 준우승까지 했다. 그리고 서울공대신문의 초대 주간을 맡았고 3학년 때 학생위원장(회장)에 당선되었다.

졸업 후 병역을 마치고 대한핸드볼협회의 기술위원 및 심판으로 활동하고 1964년부터 이사, 전무를 거쳐 81년부터 부회장을 맡아 협회의 실질적인 운영을 도맡아 한국 핸드볼이 세계 정상에 오르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93년 5월 회장직무대행직을 마지막으로 협회를 떠난 후에도 시합 때마다 경기장을 찾으며 뒤에서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1989년부터 2001년까지 대한체육회 이사를 맡아 올림픽의 본부임원으로도 참가했다.

또한, 그는 경기고와 서울공대의 OB 산악회를 이끌고 한국산악회 부회장을 지낸 산악인이었다. 등산에 관한 다수의 글을 기고하였는데 특히 산악계의 산증인으로서 소중한 기록을 많이 남겼다. 한국산악회 초창기 선배들이 해방 후 독도와 이어도를 조사하여 정부가 우리 영토로 선언하는 데에 크게 공헌하였는데 이런 역사도 세상에 알렸다.

1971년 우림콘크리트공업을 설립하여 견실한 중견기업으로 키웠다. 모범 납세자 표창도 여러 차례 받았다. 그야말로 지덕체를 갖춘 사업가였다. 지금도 동사는 지역사회에 많은 공헌을 하고 있다.

한국산악회의 초대 회장이요 민속학의 선구자인 송석하 선생의 묘터를 필자에게 알려 주었고 자비를 들여 올라가는 길을 정비하였다. 송석하 선생의 묘터에서는 불수도북(불암산, 수락산, 도봉산, 북한산)의 연봉이 보인다. 산악인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산들이다.

묘터에 비석이 남아 있으나 이름만 새겨진 간단한 비석이라, 조만간 산악계의 중지를 모아 송석하 선생의 위업을 알리는 기념비를 건립하고자 하였으나 안타깝게도 2015년 8월 27일 별세하였다. 필자로서는 2014년 추석 연휴 때 조선호텔 커피숍에서의 만남이 마지막이었다. 서립규 선생의 유지를 이어 언젠가 뜻 있는 분들과 함께 망우리에 송석하 선생의 기념비를 건립할 생각이다.

이 글을 쓰면서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선생은 작고 3일 전까지, 후대의 연구가를 위해 자신이 평생 쓴 글과 관련 자료를 자신의 블로그(Daum‘서립규’로 검색)에 올려놓았다. 우리 사회를 이끈 경기고와 서울공대 인맥, 핸드볼과 산악계의 일화가 가득하다. 마지막까지 참으로 숭고한 일생이었다.

 

서립규(1938~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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