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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작가의 망우리 이야기-21 한글의 성지, 망우리역사문화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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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11.15  13:3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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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우리공원은 한글의 성지다. 이미 알려진 인물 외로, 2021년 구청이 발주하고 한국내셔널트러스트(망우리위원회)가 수행한 망우리묘역 전수조사로 두 분의 조선어학회 회원이 새로 발견되었다. 이를 계기로‘한글’을 열쇳말로 하여 전체 인사의 행적을 다시 살펴보니 열 명 이상의 한글 선구자가 드러났다.

가장 선배격인 지석영(1855~1935)은 종두법의 도입자이며 관립(국립)의학교의 초대 교장을 지낸 의학의 선구자로 유명하지만, 한글 관련 업적도 크다. 1905년 상소문을 올려 개화가 늦어지는 것은 한글을 숭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고, 1907년 국문연구소 위원이 되어 주시경 등과 국문 보급에 힘썼고, 한글로 한자를 해석한 우리나라 최초의 한자사전인 『자전석요』(1909)를 간행하였다.

변호사 박승빈(1880~1943)은 법전의 편찬을 기획하면서 국어표기법 통일의 필요성 절감하고 국어연구의 길로 나섰다. 문일평, 오세창 등과 결성한 계명구락부(1918)는 1927년 조선광문회의 조선어사전 원고를 인수하여 한동안 사전 편찬도 시도하였다. 1931년 조선어학연구회를 설립하고 기관지 《정음》을 간행하고 저서 『조선어학』(1935)을 남겼다. 한글맞춤법 제정시에는 조선어학회의 표의주의에 대립하여 세종 이래의 전통적 표음주의(예: 먹으니↔머그니)를 주장하며 격렬한 토론을 벌였다.

애국지사 문명훤(1892~1958, 비석과 연보비)은 한글을 연구하여 『한글 제문화』, 『국어의 참두루미』라는 저서도 남겼다. 그의 연보비에는 “말에는 본이 있고 글에는 법이 있다. 말과 글이 같은 민족의 사회에서 말의 본이 글의 법이오, 글의 법이 곧 말의 본이다.”라고 새겨져 있다.

조선어학회원으로 신명균(비석), 박현식, 이탁(비석)이 있다. 신명균(1889~1941)은 최현배, 김두봉 등과 함께 주시경의 조선어강습원 제1회(1913) 졸업생으로 조선어학회의 핵심 인물이다.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대종교 나철의 사진을 품에 안고 자결하였다. 2017년 뒤늦게 애국장 서훈을 받았으나 묘는 이미 2003년경 무연고로 처리되어 용미리 무연고합장묘로 옮겼다는데, 아직 그 위치를 모른다.

박현식(1894~1954)은 중동학교 교사 출신으로 한영학원 설립자다. 조선어학회는 1930년 12월 12일 맞춤법통일안 제정을 총회에서 결의하고 원안을 1932년 12월에 작성하였는데, 박현식은 신명균과 함께 12인의 한 사람으로 원안 작성에 참여하였고, 1933년 10월 19일 임시총회에서 맞춤법통일안을 통과시켰을 때, 신명균, 이탁과 함께 작성위원 18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다.

이탁(1898~1967)은 오산고보 교사를 하며 조선어학회 활동을 하고 해방 후에는 서울사대 국어교육과 교수를 지냈다. 청산리 전투에도 참가한 독립운동가(애국장)로 1992년 현충원으로 이장되었다. 비석은 서울대 제자들이 세웠다.

이렇게 작성위원 18인 중의 3인이 망우리공원에 존재하니 비율로 약 17%(3/18)나 된다.

또한, 1929년 ‘조선어사전편찬회’ 발기인 108명에 박승빈, 박희도, 방정환, 신명균, 이탁, 지석영(6인)이 참가하였고, 1935년경 결성된 사전편찬후원회원 14인에 설태희, 설원식 부자가 참가하였다. 설원식(1896~1942)의 묘에 적힌 호 석천(石泉, 돌샘)은 주시경의 호 백천(白泉, 흰샘)에서 따왔고, 매제 김두백은 김두봉의 동생이며, 동생 설의식도 해방 후 한글문화보급회 명예위원장을 맡았고 『난중일기』를 최초로 한글로 번역하였다.

만해 한용운도 한글 보급에 노력한바, 1926년 12월 7일 동아일보에 가갸날(한글날)에 관한 글을 쓰고 마지막에 “아아 가갸날 참되고 어질고 아름다워요”로 시작하는 축시도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매우 중요한 사실이 있다. 망우리공원에는 한글이 많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월남한 이북 출신의 기독교인이 많아 그들의 비문은 대부분 한글로 새겨져 있다. 기독교 발전의 역사는 한글 발전의 역사이다. 생몰은 ‘남’과 ‘잠’으로, 고(故)는 ‘옛’으로, 묘소는 ‘자는 곳’으로 쓴 비석이 곳곳에 보이고, 근대 표기법의 한글을 볼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이렇게 많은 한글 선구자가 한곳에 존재하며, 한글 비문이 가득한 공간 망우리공원은 이제 한글의 성지로서도 떠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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