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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작가의 망우리 이야기-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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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12.16  10:2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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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우리 이야기-23 도산 안창호 선생 곁으로 온 사람들

1973년 강남구 도산공원에 모셔진 도산 안창호는 신민회와 상해임시정부의 지도자로, 대한민국장이 추서된 최고의 애국지사이다. 많은 기록은 그가 뛰어난 언변과 숭고한 인격으로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한 사실을 우리는 망우리공원의 도산 묘터에 가보면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생전에 도산을 따르던 사람들이 사후에도 망우리 도산 근처로 들어왔다. 우스갯말로, 도산은 망우리에서 가장 큰 조직을 가진 분이다.

도산은 1938년 3월 10일 경성제대부속병원에서 서거하여 망우리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고향 평남 강서군에 선산이 있었지만, 장지를 망우리로 정한 것은 1936년에 먼저 들어온 제자 유상규 옆에 묻히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잡지 《삼천리》 「1938년 5월호, 도산의 유언」, 선우훈의 『민족의 수난』(1948), 조선일보의 「인물로 본 한국학」(1969.11.6.) 등 복수의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유상규(1897~1936)는 경성의전 재학 중 3.1운동으로 상해로 망명하여 도산의 비서가 되었다. 이때부터 두 사람은 부자지간과 다름없는 관계로 맺어졌다. 임정을 떠나는 도산은 유상규에게 귀국하여 의학공부를 계속하여 민족을 위해 일하라고 권고하여, 유상규는 동기보다 7년 늦게 졸업하고 경성제대부속병원의 외과의사가 되어 의학을 통한 민족계몽에 헌신하다가 세균 감염으로 별세하여 40세의 나이에 망우리로 왔다. 유상규는 아들 유옹섭의 이름에 ‘옹(翁)’를 넣었는데 이는 도산의 다른 아호 ‘산옹(山翁)’에서 따온 것이었다.

유옹섭 선생은 2007년에 부친을 현충원으로 이장할 계획이었으나 위의 사실을 알게 된 후, 부친의 마음을 헤아려 이장을 취소하고 도산 묘터의 성역화를 위해 노력하다가 2014년에 별세하였다. 유지를 이어받은 필자는 도산 묘터의 복원 방안을 모색하다가 우연히 도산공원 내에 구비(1955)가 사용되지 않고 있는 것을 발견하여, 관계기관의 협력을 얻어 2016년 3월 1일에 망우리로 다시 이전하였다.

비석(금석문)은 당대를 증언하는 소중한 문화재다. 1973년 이장 후에 43년 만에 돌아온 비석은 이제 두 분의 아름다운 인연의 이야기를 전해 주는 상징물로 우뚝 서 있다. 이러한 일화 하나만 보더라도 도산의 인격이 어떠했는지 우리는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도산을 따르던 많은 이들이 사후에 도산 근처로 들어왔다. 도산의 우측에는 조카사위인 흥사단원 김봉성이 1943년에 들어와 유상규와 함께 좌우에서 도산을 모시는 모양새로 있었다. 2016년에 서울현충원 납골당으로 이장되었으나 비석이 남아 있다.

그리고 2017년에는 도산 묘 바로 뒤에서 평북 선천 출신의 흥사단원 이영학(1904~1955)의 묘가, 2020년에는 지석영 묘 아래쪽에 평남 순안 출신의 흥사단원 허연(1896~1949)의 묘가 발견되었다. 허연 선생의 유족에 따르면 “도산의 발치에 묻어 달라”며 고인은 망우리에 가족묘를 마련하였다고 한다. 두 분 모두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또한, 2021년 묘역전수조사시에 임시정부에서도 일했던 흥사단원 김기만, 나우 두 분이 추가로 발견되었다. 그리고 1995년과 2006년에 각기 현충원으로 이장된 흥사단원 조종완과 문명훤(비석 존치)도 함께 생각해 보면, 많은 흥사단원은 죽어서도 존경하는 도산 선생 곁으로 찾아왔던 것이다.

흥사단원은 아니었지만, 도산과 동향인 김분옥(유관순 이화 동기)도 근처에 자리를 잡았듯, 도산 가까이에 들어온 무명의 서민도 적지 않을 것이다. 고인이 위대한 지도자였다는 것은 망우리공원에서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도산의 유해는 1973년에 도산공원으로 이장되었지만, 고인의 피와 살은 이 땅에 스며들어 있기에 묘터는 소중하다. 구비석도 돌아왔으며 감동적인 인연의 스토리까지 전해 주고 있다. 많은 동료를 남겨두고 강남으로 옮겨진 도산의 마음은 어떠할 것인가. 그 마음을 헤아려 중랑구청은 내년에 도산 묘터를 정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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