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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작가의 망우리 이야기-24 해돋이의 명소, 다시 떠오른 아침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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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1.03  10: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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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우리 이야기-24 해돋이의 명소, 다시 떠오른 아침 해

 

옛날에는 용마산, 망우산이 모두 아차산에 속했다. 필자가 어릴 때만 해도 망우산은 들어본 적이 없다. 아차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가 용마봉이었다.

아래에 마장이 있어 용마(龍馬, 뛰어나게 훌륭한 말)라는 명칭이 생겼다. 효명세자(익종, 1809~1830)의 수릉(綏陵)이 천장산에서 1846년(헌종13)에 용마봉 아래로 옮겨진 후에 용마산으로 격상되었다. 수릉은 다시 1855년 건원릉 왼쪽으로 옮겼고 부인 신정왕후 조씨(조대비, 1808~1890)가 합장되었다.

아차산은 아단성(阿旦城)이라는 이름으로 사료에 처음 나온다. 광대토대왕비(414)에 아단성이라 나오고 『삼국사기』(1145) 「백제본기」에는, 286년 백제 책계왕 즉위 원년에 고구려의 침입을 염려하여 아단성을 수리하였다고 나온다. 동시에 아차성(阿且城)도 나오는데 학계는 일반적으로 같은 것으로 본다.

고구려의 온달장군(?~590)은 아단성에서 전사했다. 『삼국사기』 열전 온달편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

“마침내 출전한 온달은 아단성 아래에서 신라군과 싸웠는데,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 쓰러져 죽었다. 온달의 장례를 치르려고 관을 옮기려고 하였지만 관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부인 평강공주가 찾아와서 관을 어루만지며, ‘죽음과 삶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아아! 이제 돌아가시지요’라고 말하자 드디어 관이 움직였다.”

단(旦)은 땅(一)에서 해(日)가 떠오르는 모양이고 아(阿)는 언덕이다. 해 뜨는 산이다. 전략적 요충지인 한강과 아단산을 차례로 차지했던 백제, 고구려, 신라는 산의 정상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나라의 만세를 기원하였을 것이다. 용마산 정상이나 망우산의 전망대에서 동쪽 산을 바라보면 과연 그렇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아단산은 다시 조선과 관계를 맺게 된다.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국호로 정하여, 단군 조선은 고(古)조선이 되었다. 조선(朝鮮)은 밝은 아침 해의 나라이다. 태조는 자신의 이름도 이단(李旦)으로 고쳤다.

그러자 문제가 생겼다. 어느 지명이건 왕의 신성한 이름자를 피해야 한다(피휘). 한성 천도 후에 묏자리로 정한 건원릉 바로 옆에 아단산이 있는 게 아닌가. 단(旦)을 피해 차(且)를 취했지만 혼동과 오기를 피할 수 없다. 아예 모양이 확실히 다른 아차산(峨嵯山)으로 바꿨다. 그래서 아차산(峨嵯山)은 1404년(태종4) ‘조운흘의 졸기’에 처음 등장한다.

운명적으로 나라와 자신의 이름이 같은 아단산 옆에 들어온 태조는 지금도 동쪽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게 되었으니 건원릉은 최적의 길지, 명당이 아닐 수 없다.

한강과 아차산 지역을 차지한 나라는 모두 최고의 융성기를 맞이하였고, 신라는 한반도의 통일까지 이루었다. 조선에서도 이곳은 건국의 설화를 낳으며 오백 년 역사를 함께하였다. 그래서 필자는 2016년 조성한 망우리 사잇길의 ‘구리(한강)전망대’의 안내판 맨 위에 ‘역사의 전망대’라고 썼다.

조선이 망하자 아차산의 해는 저물었다. 아차산을 등진 망우리면은 1914년 구리면 속으로 들어가 망우리가 되며 역사성이 격하되었고, 이어서 1933년 공동묘지의 조성으로 빛을 완전히 잃었다. 1973년의 공동묘지 폐장 후에도 20세기 말까지 어둠의 그림자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금세기에 들어와서 망우리역사문화공원은 선진 대한민국의 뿌리가 된 위인들이 모여 있는 근대사의 박물관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근대의 새벽을 연 선구자들이 한곳에 모여 있는 것이 밝혀졌으니, 산의 정상에서 맞는 해돋이는 그 어느 곳보다 숙연하고 의미 깊다. 망우산(아차산)은 서울의 변방이지만 정상에 올라간 당신은 한반도 역사의 중심에 서서 해돋이를 맞이하게 된다.

새해의 첫 번째 해를 바라보며 우리는 한 해의 결의를 다진다. 태조가 좋은 묏자리의 소망을 성취하여 망우하였듯, 망우리공원에서 (기원을 통해) 소망을 이룸으로써 근심을 잊는다. 밝은 해는 다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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