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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작가의 망우리 이야기-26, 백사 이항복의 동강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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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2.26  11: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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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 이항복(1556~1618)은 말년에 망우리에 동강정사라는 별서를 짓고 살았다. 동강정사와 망우령에서 쓴 한시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백사는 임진왜란 때 선조의 피난길을 수행하기도 하며 주요 관직을 거쳐 영의정(1600~1604)까지 올랐다. 1608년 광해군 즉위 후 다시 좌의정으로 출사하였으나, 인재 천거를 잘못하였다는 구실로 정적의 공격을 받고 1614년 1월 물러났다. 불암산 아래 갈대 무성한 노원(蘆原)에서 머물다가 1616년 망우리에 동강정사를 짓고 동강노인이라 자칭하였다.

동강(東岡)은 ‘동쪽의 언덕’, 즉 한양 동쪽의 언덕 망우리를 가리킨다. 정사(精舍)는 정신을 수양하는 곳이다. 동강은 후한서에 나온 말로, 안제(安帝) 때 누가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있자 친지가 그에게 이르기를 “무엇 때문에 그대만이 동쪽 산등성이의 언덕을 지키려 하느냐?”라고 한 것에서 유래하여 선비의 은거를 의미한다.

정사의 위치가 궁금하다. 백사의 증손 이세구는 그의 문집 『양와집』의 「동강정사도발(圖跋)」에서, 동강정사를 그림으로 그려 정사는 사라지더라도 그 땅과 모습이 영원히 전해지도록 하였다. 동강은 정자 앞쪽의 높은 봉우리를 가리킨다고 하였다. 그림은 전해지지 않는데 동강정사의 위치는 이렇게 적혀 있다.

“동강정사는…망우리 고개 한 자락이 날 듯 춤추며 남으로 무임강(無任江)을 향하여 5리 가다가 두 개의 못이 보이는 곳에서 지세가 끝이 난다. 정사는 그 위 북쪽에 걸터앉아 남향으로 되어 있다.…정사 동쪽에 다시 안채 일곱 칸을 지었다. 그 서남쪽에 샘이 있는데 물맛이 달다. 남쪽 아래로 두 못이 바라보인다.”(『조선의 문화공간3』, 이종묵)

백사의 제자 정충신(1576~1636, 충무공)은 백사의 유배부터 장례까지의 일기 『북천일록』을 남겼는데, 그 책에서 정사의 위치를‘도성 동쪽 25리’라고 하였으니 대략 지금의 망우리가 맞다. 또한, 위의 글에서 물맛이 달다고 하였으니 태조가 마시고 칭찬했다는 ‘양원리 우물’처럼 이 지역의 물이 좋았다는 것이 다시 한번 확인된다.

그런데, 무임강은 무임포(퇴계집)라 하여 왕숙천 하류라는 설이 있고, 남쪽으로 못이 두 개 보인다고 하였으니 장자못이 보이는 구리 쪽의 가능성이 있다. 지금 망우리 고개 넘어 교문리에 있는 서예가 김규진의 과수원을 유족은 ‘망우리 과수원’이라 불렀고, 방정환의 묘도 옛날 기사에 ‘망우리 아차산’에 있다고 하였듯 옛날의 망우리는 고개 너머 구리까지 전부 포괄한 지명이었다. 정사의 정확한 위치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

백사는 1617년(광해군 9년) 11월, 인목대비의 폐위에 관해 반대 의견을 올렸으나 삼사(三司)의 탄핵을 받고 평북 창성으로 유배가 결정되었다. 공식적인 어명을 받들기 위해 12월 22일(양력 1월 18일) 청파촌의 하인 집으로 떠나가는 길에 망우령을 지나며 아래의 시를 지었다.

 

모진 바람도 철석같은 마음 뚫기 어려우니(獰風難透鐵心肝)

서관 땅 만 겹의 뫼도 두렵지 않도다(不怕西關萬疊山)

동쪽 바위 천 길 고개에 말을 세우고(歇馬震巖千丈嶺)

석양에 돌아보매 목릉이 쓸쓸하도다(夕陽回望穆陵寒)

 

목릉은 선조의 능인데 당시는 지금 경릉의 위치에 있었다. 유배지는 다시 몇 차례 변경되어 북청으로 결정되고 정충신이 백사를 따라갔다. 이미 중풍까지 앓았던 백사는 유배지에서 고생 끝에 5월 13일 63세로 세상을 하직하였다. 광해군은 뒤늦게 자신의 처사를 뉘우치며 백사의 관직을 회복시키고 예장을 명하였다.

정충신은 손수 염습을 하고 영구를 모셔 포천 선산에 장사를 지냈고, 상주는 고인의 뜻을 헤아려 신주(神主)를 동강정사에 모셨다(반혼). 정충신은 마음으로 삼년상의 예를 갖췄고 스승의 기일과 명절 때마다 유족의 집을 찾아와 참례하였다. 한편, 김윤경은 《동광40호》(1933.01.23.)에서 정충신이 동강정사에서 삼년상을 지냈다고 썼다.

목릉을 향한 망우리 고개 적당한 장소에 시비를 건립하여 백사의 충절을 기렸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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