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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작가의 망우리 이야기-30<특종>, 소파 방정환의 묘를 만든 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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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4.28  17: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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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 방정환(1899~1931)은 별세 후에 홍제동 납골당에 안치되었다가 1936년 망우리로 왔다. 함께 《어린이》 잡지를 만든 후배 최신복(1906~1945)과 윤석중이 총무를 맡아 망우리 묘의 조성에 앞장섰다. 최신복은 수원에 선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부모를 소파 바로 아래에 모셨고, 자신도 훗날 아내와 함께 부모님 아래로 왔다.

   
 

 

그런데 소파의 묘는 흔히 보는 봉분이 아니라 돌무덤이다. 아래 기반은 쑥돌로 쌓고, 위에 네모난 흰색 비석이 놓여 있다. 비석 앞면 위에 위창 오세창의 글씨로 ‘童心如仙(동심여선, 어린이의 마음은 신선과 같다), 어린이의 동무, 小波方定煥之墓(소파방정환지묘)’라고 새겨지고 뒷면에는 ‘동무들이’라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 방향으로 새겨졌다. 동무들이 돈을 모아 이 묘를 조성했다는 말이다.

묘라면 당연히 흙으로 봉분을 만들던 시절, 예술가의 상상력에 바탕을 두지 않았다면 이런 식의 모양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필자는 예술적으로 뛰어난 소파의 묘를 볼 때마다 과연 누가 이것을 만들었을지 매우 궁금하였다. 소파의 손자에게도 물어보았지만, 만든이에 관해서는 전혀 들은 바가 없다고 했고, 그동안 찾아본 자료 어디에도 만든이의 이름을 발견할 수 없었는데, 최근 옛날 기사를 꼼꼼히 살피다가 단서를 발견했다.

1936년 5월 3일자 조선일보에 ‘어린이날의 창시자 故방정환 씨 기념비’라는 기사에 “…오는 7월 23일 5주기 기일에 세우고자 씨의 친지와 어린이 관계자들이 이번 어린이날을 기회하여 발기하였는바…조선중앙일보 출판부 내 최영주(최신복), 윤석중 양씨에게 헌금을 보내주기 바란다”고 하고, 발기인으로 김동환, 손진태, 설의식, 박팔양, 안석주, 이태준, 이은상, 정인섭, 현진건 등 27인의 이름을 밝혔는데 여기에 김복진(金復鎭)이 들어 있다.

김복진(1901~1940)은 1928년 4차공산당사건으로 검거되어 1934년 2월 출소하고 다시 12월 ‘신건설사’ 사건으로 체포되었다가 무혐의로 1935년 2월 출소하였다. 조선중앙일보에 입사하고, 동년 5월 이태준(소설가)의 뒤를 이어 학예부장을 맡았다. 김복진 외로 조선중앙일보는 사회부장 박팔양, 출판부의 최신복과 윤석중이 기념비 건립에 앞장섰고 제막식 기사도 다른 신문사보다 크게 다뤘다. 동지 1936년 7월 24일 기사에 실린 사진을 보면 원형이 지금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김복진은 두 살 위인 소파와 친한 사이였다. 김복진이 1940년 잡지 《조광》에 연재했던 「조각생활 20년기」에 “…하숙에 돌아와서는 그래도 배운 버릇을 놓을 수가 없는지라 연극 구경에 분주하게 다니게 되는데 소파 방정환 형과 박승희(극작가) 형과는 이 통에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라며 소파와의 교우 관계를 밝혔다.

김복진은 동경미술학교 재학 중인 1924년 제국미술전람회에 입선한 한국 최초의 조각가로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조선중앙일보는 사장 여운형을 비롯하여 사회주의자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고, 김복진은 카프(1925)의 발기인이요 조선공산당원이었고, 부인 허하백도 좌익 활동으로 6.25 때 월북했거나 타살되었다고 전한다. 그래서 소파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아무도 기념비의 제작자를 말하지 않았고 기록조차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김복진은 1993년에야 건국훈장 애국장 서훈을 받았다. 생전 40여 점의 작품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6.25를 거치며 모두 사라지고, 금산사 미륵대불(1936)이 유일한 작품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소실된 원형의 복원 작업이라 현대 조각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소파의 묘는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한국 최초의 (현대) 조각가 김복진의 유일한 작품이 아닐 것인가?

더구나 김복진은 ‘서도(서예)는 조각의 어머니’라며 위창의 전각이 가진 조형미를 높이 평가했는데, 바로 그 위창의 글씨가 비석에 새겨져 있으니, 고인 소파와 만든 이 김복진, 글씨를 쓴 위창의 관계까지 고려하면 비석의 문화유산적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미술계의 관심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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