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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작가의 망우리 이야기 36, 식물학의 선구자 장형두(1906~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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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7.29  17:4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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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10월 26일 국회본회의. 신현모 의원은, 10월 20일 오후 2시 우리나라의 ‘유일한 식물학자’요 서울사대 교수인 장형두씨가 시내 중부서에 어떤 혐의로 검거되어 인천경찰서에 압송된 후 23일 돌연 사망한 사실을 알렸다. 장씨는 전남 광주 사람으로 20여 년간 식물학 연구에 헌신한 과학자인데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 조사단을 파견하자고 긴급동의를 구하여 만장일치로 가결되었다.

장형두(張亨斗)는 1906년 광주에서 출생하여 1922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부립원예학교를 다니다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일시 귀국, 이리농림학교에서 공부하고 다시 도일하여 동경고등조원학교(현 사립 동경농대)를 1928년 졸업했다. 일본 식물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키노 도미타로(1862~1957)에게 식물분류학 연구의 지도를 받고 그를 일생의 지표로 삼았다.

조선일보 문화부, 숭실전문, 경성약전 식물학교실, 경성제대 연구실 등에서 연구하는 한편, 그는 2만 원의 거금을 들여 식물 표본 수집에 나서 1933년 7천 점을 연희전문에 기증하고 향후 연전에 동양 제일의 표본실을 만들어보고자 하였다(1933년 1월 21일 동아일보). 그러나 표본은 6.25 전쟁 등을 거치며 소실되었는지 유출되었는지 현존하지 않는다. 어떤 경로로 들어갔는지 지금 현재 일본 국립과학박물관에 장형두의 표본이 900점 이상 소장되어 있다는 씁쓸한 사실만 확인된다.

개나리의 학명은 ‘Forsythia koreana (Rehd.) Nakai’이다. ‘Nakai’는 일본 식물학자 나카이 다케노신(1882~1952)을 말한다. 그는 1910년부터 한반도 식물 조사에 나서, 많은 우리 고유식물의 학명을 지었다. 국립생물자원관이 펴낸 『한반도고유종총람』의 식물 527종 중 327종이나 된다고 한다. 이에 장형두는 일본인 중심의 조선박물학회(1923)와 별도로 1933년 이덕봉, 박만규, 석주명 등과 함께 조선박물연구회를 조직하고 주체적인 연구에 나섰는데. 특히 우리의 동식물에 우리말 이름을 붙이기 위해 노력했다. ‘애기똥풀’, ‘금낭화’, ‘바람꽃’, ‘괴불주머니’ 등이 새로 명명한 것이다. 순수한 조선 이름을 찾아 기록한 장형두 등의 노력은 조선어학회의 한글을 통한 독립운동과 맥을 같이 한다.

1936년 08월 조선일보의 백두산탐험단에 식물학회 간사로 참여하여 신발견종을 포함 2백여 종을 채집하였고, 1938년 5월에는 전남 지역 도내 박물(생물) 선생을 총동원한 전남 지역 식물 탐사를 지휘하였다. 해방 후, 서울중학교 교사를 거쳐 1948년 9월 1일 서울사대 부교수에 임명되고 곧바로 『학생식물도보』를 출간했다. 여기에서 그는 고산은 ‘높산’으로, 식물은 묻혀 산다고 ‘묻사리’라 표현하였다.

1949년 7월 대한산악회의 제5회 학술탐사사업 서해안 탐사에는 동물반 석주명과 함께 식물반으로 장형두가 참가했다. 그는 일생을 식물학 연구에 가산을 탕진하였을 뿐 아니라 산과 바다에서 생명을 잃을 뻔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식물학 최고의 권위자인 서울사대 교수 장형두는 어이없게도 좌익 혐의로 고문치사를 당했다.

국회가 밝힌 조사 결과는 이렇다. 경기도 경찰국은 연백 염전에서 운전수로 근무하는 국한종(장형두의 처 언니의 아들, 이질)을 비밀리에 내사중 10월 21일 국한종이 서울사대부중 구내에 있는 장형두 사택을 방문하여 좌익계열 지령문을 전달하는 것을 보고, 형사대는 곧바로 국한종을 체포한 후 장형두와 처, 저녁 식사에 동석한 사대 조수 임양재를 체포하여 중부서에서 조사 후, 장형두만 인천으로 압송하여 취조 중에 고문으로 사망케 하였다. 사인은 타박으로 인한 뇌진탕이었다.

망우리공원 장형두의 묘가 2021년 전수조사시에 눈에 띄게 된 것은 아들 장득성씨가 2019년 세운 새 비석 덕분이었다. 비석에 새긴 ‘서울대학교 사범대 부교수’가 단서가 되었다. 방정환은 어린이 문화사업, 조선어학회 회원은 한글 연구로 독립지사의 서훈을 받았으니, 우리나라 식물학의 선구자 장형두에게도 공적에 걸맞은 예우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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