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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작가의 망우리 이야기-38, 초교파 만주조선기독교회 창립자, 변성옥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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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8.31  17: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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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에서의 독립운동으로 2년간 옥고까지 치른 변성옥 목사(1892~1950)의 묘는 최학송 묘를 지나 소방함 옆 돌계단을 조금 올라가 바로 좌측에 있다. 아무도 찾지 않아서인지 풀만 가득하다.

평남 평양 출신이다. 평양 광성학교를 거쳐 1909년 숭실중학, 1913년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했다. 전도사로 활동하다가 1916년 11월 도미하여 캘리포니아주 퍼시픽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일리노이주 노스웨스턴대학에서 1920년 신학사 학위를 받았다.

3.1운동 후에는 유학생 신분으로 몇 차례에 걸쳐 대한인국민회에 의연금을 기부했고, 1920년 2월에는 학교에서 ‘현금(현재) 한국의 비극’이라는 주제로 연설하여 교장과 청중으로부터 조국의 독립과 기독교를 위한 찬조를 끌어냈다.

1921년 8월 귀국하여 광성고보 교사로 있으면서 평양을 중심으로 유명한 웅변가로서 교회와 학교에서 강연하고 1923년 경성 협성신학교 교사(1927 교감)로 부임한 뒤로는 YMCA 등에서 강연 및 설교를 하고 동년 목사 안수를 받고 1928년 7월 미국 LA에서 열린 세계주일학교 대회에 24명 한국 대표 중 북감리교 대표로 참가한 후 시카고대학 서머스쿨에서 종교학을 공부하고 동년 9월 귀국했다.

1930년 남북감리교회가 합동하여 하나의 조선감리교회를 창립할 때 신흥우, 오기선, 김종우, 노블과 함께 북감리교 전권위원으로 참가하였고 마침내 12월 2일 조선감리교총회가 개최되어 초대 총리사(감독)로 남감리교의 양주삼 목사가 선출되었다.

1931년 4월 송도고보 부교장, 1933년 4월 개성중앙회관(사회선교기관) 총무로 일하고 만주 하얼빈교회의 목사로 파견되어 선교 사업에 힘썼다.

그런데 당시에는 교파에 따라 선교 지역이 분할되었던 시대라 주로 정치·경제적 이유로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에게는 오히려 장애가 되었다. 이에 변성옥은 1935년 2월 한동규, 현성원, 김종철 등과 함께 길림에서 북만교역자대회를 열고, 교파초월·종교사상혁신·경비자급을 대원칙으로 내건 초교파적인 조선기독교회를 창설하고 “1. 사도신경을 신경으로 하며 2. 신구약성경을 우리의 정경으로 한다”라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교회는 1년 만에 10개의 지방교회, 1,500명의 교인으로 크게 성장하여, 1936년에는 《조선기독》 회보를 발간하고, 신학교 길림학원을 설립하고 변성옥이 원장을 맡았다. 신학교의 운영은 집단농장 형식을 취하여 여름에는 농사를 짓고 농한기인 겨울에 집중적인 교육을 실시했다. 외국 선교사의 지원에 의존하지 않는 자립적인 선교정신은 만주의 독립운동가들과도 연결되어 그는 독립운동 혐의로 1943년부터 2년간 길림에서 옥고를 치렀다.

해방 후에 함북 길주신학교 교장을 지내다가 월남하여 1946년 5월 YMCA 총무(7대)에 선출되었다. 한편, 1946년 9월 대한독립독립촉성국민회 청년부장, 11월 제1회 전조선레스링선수권대회 대회장, 8월 8.15 기념행사 집행위원, 12월 미군정하의 남조선 관선 입법의원, 1947년 3월 발족의 조선적십자사 비서장, 1948년 3월 (제헌)국회선거위원회 위원을 지냈고, 해방 후에 재건파와 복흥파로 분열된 감리교회의 합동에 주력하여 기독교대한감리회로 통합(1949년 4월)시키는 데 이바지했다.

또한, 그는 YMCA 종교부 간사로 있던 협성학교 제자 이호빈 목사 등과 1947년 4월 YMCA 내에 초교파적 중앙신학원을 설립하고 초대 원장에 취임하였다. 중앙신학원은 지금의 강남대학교로 발전하였다. 대학 홈페이지에 초대 총장으로 그의 사진이 올라가 있다.

1948년 5.10 제헌국회 선거 이후로는 YMCA 재건에 전념하고자 1948년 8월부터 1년간 유럽과 북미에서 YMCA 연수를 받았다. 그 지식과 체험을 국내에서 펼치고자 노력하던 1950년 3월 5일, 청주 YMCA 창립 2주년 행사 참석의 출장길에 급성 췌장염으로 순직했다. 장례식은 3월 9일 종로 YMCA 강당에서 거행되었다.

YMCA도 초교파적 기관이다. 초교파 만주 조선기독교회, 초교파 중앙신학원 창설 등으로 인해 오히려 어느 조직에서도 그를 제대로 기록하지 않았고, 또한 이북 출신이었기에 세상에 잊힌 존재가 되지 않았을까. 일제하 국내외에서 나라를 위해 일하다 옥고까지 치르고 해방 후에도 크게 활약하다 숨진 목사 변성옥은 한국 기독교의 선구자로서 반드시 조명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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