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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작가의 망우리 이야기-15 <특종> 망우리의 3.1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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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8.20  08:5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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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우리 이야기-15 <특종> 망우리의 3.1독립운동

 

중랑구의 역사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3.1운동 당시 상봉리에서 30여명이 만세운동을 벌였다는 기록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경무총감부 고등경찰과 1919년 3월 28일자 보고서(高제9146호,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3월 27일 상봉리에서 약 30명의 군중이 운동을 개시하여 헌병이 출동, 19명을 검거하고 해산시켰다.

그러나 개국공신 남재의 의령 남씨, 정구의 동래 정씨, 신경진의 평산 신씨로 대표되는 씨족들이 모여 살며 육백 년을 내려온 중랑구로서는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있었다.

1914년 일제는 행정구역 개편을 통해 구지면의 구(九)와 망우리면의 리(里)를 따서 구리면을 만들고, 망우리면은 면(面)자를 떼고 축소하여 구리면 속으로 집어넣었다. 아차산으로 분단된 두 지역을 굳이 하나로 묶으며 역사성 깊은 망우리를 격하시켰으니 지역민은 국치뿐 아니라 면치(面恥)까지 겪은 셈이다. 개국시부터 조선과 운명을 함께한 고장에서 3.1운동 30명의 기록밖에 없을 것인가.

아니나 다를까, 최근 망우리에서 3회에 걸쳐 만세운동이 있었다는 소중한 기록을 찾았다. 삼일운동 관련 일제의 통계 자료가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 2019년 8월 31일에 새로 올라가 있었다. 뒤늦은 발견에 부끄럽지만 이제라도 지역에 널리 알리고자 한다.

그 중 ‘조선소요사건일람표’라는 일본 외무성 자료(朝憲警 제107호)가 있다. 조선헌병대사령관이 육군성 차관에게 1919년 10월 2일자로 보내면서 서문에 이렇게 썼다.

“이전에 송부한 ‘조선소요사건개람표’는 소요 당시 받은 전보 보고에 근거해 작성한 것으로 다소 사실이 다른 점도 있기에 금회 정확한 조사를 수행하여 표를 작성하여 송부합니다.”

검거인원 숫자까지 기재되어 정확성이 뒷받침되며, 또한 일제가 숫자를 줄이면 줄였지 부풀릴 이유는 없다. 다른 자료도 참조하여 구리면 관련 기록을 아래에 옮긴다.

3.1운동 당시 (50명 이상 규모의) 만세운동 장소로, 양주군 구리면에서는 망우리가 유일하였다. 3월 27일(목) 구리면 망우리에서 250여명(검거 75)의 만세운동이 있었고, 3월 29일에 다시 망우리에서 100여명(검거 37)이 만세를 불렀다. 3월 28일과 29일은 구리면 아천리에서도 주민 수십 명이 아차산 정상에 태극기를 세우고 만세를 불렀다. 일람표에는 50명 이하 소수는 기재되지 않아 아천리의 기록은 없지만, 당시 체포된 이강덕의 판결문으로 거사가 확인된다. 또 다시 3월 30일 망우리에서 3차로 100명(검거 28)이 만세운동을 벌였다.

이렇게 망우리에서는 3월 27일(250), 29일(100), 30일(100)의 3회나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비폭력 운동이고 재판까지 간 일제의 기록이 없으니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1907년 당시 망우리면 전체 인구가 2천명도 되지 않았으니(통감부 조사), 의식 있는 어른 대부분이 참가한 거면(擧面)적인 3.1만세시위였다고 볼 수 있다. 학자들은 이 일람표에 근거하여 망우리를 구리면 3.1운동의 대표적 장소로 쓰기 시작했다.

만세를 부른 장소는 어디였을까? 당시 망우리는 지금의 망우본동에 속하고, 다수가 모일 수 있는 장소로서는 지금의 망우본동주민센터 근처가 아닐까 추정한다. 국사편찬위원회도 그렇게 표시하고 있다.

주모자는 누구였을까? 당시 상봉리 321번지 거주, 경주 최씨 최승환(崔承煥 1873~1968)이라는 애국지사(애족장)가 유력하다. 1920년 11월에 드러난 대한독립단 사건의 중요 인물이었다. 망우본동 남화창 전 주민자치위원장의 모친(1931년생)의 증언에 따르면, 외조모의 동생이 최승환인데, 집으로 헌병들이 들이닥쳐 가택수색을 벌였다고 한다. 외아들 최신욱(공보처 경리과장 1953)은 면목동에 살았고 손자 최영진은 묵동에 살다가 1984년에 미국으로 이민 갔다. 유족 인터뷰가 어려우니 일단 추정에 머문다.

 

   
 

‘조선소요사건일람표’(1919.10.02.)

월일: 3월 27일, 소요지명: 양주군 구리면 망우리, 무폭행(비폭력),

소요인원: 250, 소요자종별: 普(일반인), 검거인원: 75, 소요지 관할: 헌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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